• 첫째날(7. 9) : 
  • 어제까지만 해도 장마라 비행기가 운행될 수 있을까 하고 염려했는데 다행이도 오늘은 날씨가 장마철 답지 않게 화창하다. 1997년 7월 9일, 우리는 첫 유럽여행을 떠나기 위하여 진주-서울행 항공기에 몸을 담았다. 출발일은 내일 오후 1시 30분 이지만 여행사에서 장마라 하루 일찍 상경하여 서울 공항 부근에서 하루 묶는게 좋으리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오늘 떠나는 것이다. 공항에는 wife와 다영, 형기가 배웅을 나왔다. "다영아 아빠올 때 무슨 선물 사올까 ?" 다영이는 한참 머뭇거리다. "찌퓨차" 라고 대답한다.
  • 7.10 : 
  • 11시에 공항에 모여 여행사 안내직원으로부터 간단한 탑승수속에 대한 당부말을 듣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우리는 벌써 유럽쪽을 향해 날고 있었다.  비행기 엔진소리에 청각 세포가 둔감해질 즈음, 기내식이 나왔다. 밥에 쇠고기 야채 등을 볶은것, 빵, 버터, 치즈, 커피, 크림, 설탕, 소금, 후추, 샐러드, 푸딩, 물(제주도산), 과자, 그리고 와인 잔이었다
  • 첫 도착지가 로마인데 로마는 우리나라와 7시간의 시차가 있다고 한다. 즉 지금이 오후 1시30분인데 7시간의 비행기 탑승후에도 그쪽시간으로 따지면 1시30분이고 날은 훤하다는 말이다 항공기는 시베리아(소련) 항공을 지나 유럽으로 향했다.창밖으로 아주 긴 시베리아의 강들이 보이고...어느 시점에서는 항공기 창문을 다닫고 밖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였다. 약 13시간정도의 시간이 소유되어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처음의 아주 먼 여행이고 장장 13시간을 날아온 먼 이국이지만 그다지....현지시간 오후 7시 30분, 아직 햇살이 쨍쨍하다. 로마공항에서 로마는 소매치가로 유명하다는 주의 말을 듣고 우리는 전세버스에 짐을 싣은 뒤 저녁식사를 위해 로마 시내로 향했다. 기내에서 2번의 밥을 먹었는데 현지 시간에 맞추다보니 또 저녁을 먹어야한다고... 
  • 말로만 듣던 이태리 로마 과연........ 탄성이 먼저 흘러 나왔다. 도시는 온통 잡지책에서만 보던 그런 옛 도시로 현대 건축물이라고는 거의 찿아 볼 수 가 없다. 한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뒤 우리는 내일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하기로 하고 일단 공항부근의 "에어포터 팔래스 호텔로 향했다. 저녁 9시가 가까워 오는데도 아직 햇살은 눈부시다. AIRPORT PALACE 호텔 앞에 차를 세우고 짐칸에서 짐을 꺼내서 로비에 짐을 두고 서 있는데 우리일행중의 한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고 들어온다. 뒤이어 여러 사람이 들어오면서 "아주머니가 손가방을 날치기 당했어!" . '아 벌써......' 안내원에게 주의를 듣던 날치기가 벌써 우리일행에게, 그것도 호텔에 도착하자말자 덤볐던 것이다. 
  • 과연 겁나는 동네 이구나! 다들 멍하다 이렇게............. .
  • 7. 11:(로마) 
  • 아침 일찍 로마 여행을 위해 전용 버스에 올랐다. 
  • 현지 가이드분이 소개를 한다. 이원남, 그는 성악 공부를 위하여 이곳에 유학온지 8년째 된다는 분이다. 목소리도 성악하시는 분답게 시원 시원하다. 몇 년후에는 한국에서 아마 귀국 공연을 하게 될 것이고 그때는 필히 구경오라는 약간의 코메디성 발언을 한다. 버스에 오르자 마자 로마의 인사법을 가르쳐주신다. "본 조르노":아침인사, 보나세라 :저녁인사, 그라체:감사, 차우:안녕 덧붙여서 사업은 영어로 하고, 사랑은 이태리어로 속삭이고 싸움은 독일어로 하라고... 이태리의 면적은 30만 km이고 인구는 6천만. 1년에 이태리를 찿는 관광객의 수는 8천만명, 88올림픽때 우리나라의 관광객 유치 목표가 400만명 이었으니까 8천만명은 어마어마한 수치다. 로마는 BC 753년경 로물르스와 레물르스 쌍둥이 형제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그리스 신화에서 이름만 변화시켜 로마 신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 처음 간곳이 바티칸이다 바티칸은 0.44평방 m로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도시이며 인구는 1600명이며 스위스 근위대가 지키고 있단다. 로마의 중심에 위치하지만 별도의 국가로 취급하기에 전화도 국제전화를 별도로 사용한다고 한다. 바티칸의 하루 관광객의 수는 만오천명이며 하루 박물관 수입은 1억원 정도 그리고 유네스코에서 지정하고 있는 세계 문화유산의 45%가 이곳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로마 시내에서 하나의 성벽만 통과하니 바티칸이다. 저멀리 보이는 성당이 성 베드로 성당이다. 
  • 솔방울 정원으로 이동을 하였다. 파라솔모양의 솔방울 조각이 있으며 그 위에 교황의 문장이 조각되어있다. 현재의 요한바흐로 2세는 24대의 교황이며 최초의 폴란드 인이다. 교황은 세계의 추기경중에서 만장일치제를 채택하여 뽑는데 다음의 추기경은 아시아권에서 나올 예정이며, 김수환 추기경이나 흑인 추기경 중에서 나올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한다. 교황을 선택하는 장소는 카펠라 시스티나 성당으로서 이성당은 미켈란젤로가 혼자서 그린 천지창조와 최후의 성찬으로 유명하다. 이는 프레스코 벽화로서 석회와 모래를 혼합하여 벽에 덪칠을하며 마르기 전에 색칠을 하는 기법이다. 이 프레스코 벽화의 단점은 균열로 인하여 200년마다 복구를 해야하며 장점은 벽이 존재하는한 그림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 교황 전용성당인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겨져있다. 제단의 왼쪽에는 모세의 일생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예수님의 일생이 그려져 있는데 천장은 벽화가 없이 비어 있었다고 한다. 이때 브라만테가 경쟁심에 의하여 미켈란제로를 추천하였다고 한다. 1508년 미켈란젤로는 35세의 나이에 천지창조를 프레스코 기법에 의하여 혼자서 완성하였다고 한다. 천장을 서서 쳐다보고 그리다가, 앉아서 그리다가, 나중에는 누워서 그리다가........ 천지창조가 완성시 미켈란젤로의 얼굴은 찌그러져서 근육이 굳어서...... 중간에 교황이 그림을 보자고하자 미켈란젤로는 절대 완성전까지는 안된다고... 불화로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중단하고 고향에 내려와 있을 때 교황이 찿아와서 빌었다는 일화가 있다. 
  • 미켈란젤로가 60세때 시스티나 성당 앞벽면에 최후의 심판을 그렸는데 그림 완성시 바흐로 3세가 제작 도중인 그림을 목격하고 신성한 성당에 나체를 그렸다고 해서 참사형을 시켰다고 한다. 그후에 보르테를 시켜서 남자의 중요부분만 천으로 가리는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하여 그 유명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완성되었는데 이 두 그림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나체이다. 최후의 심판에서 천국의 열쇠를 쥐고있는 자는 베드로이고 그림의 옆면에 찌그러진 자화상을 그려놓았다.  .
  • 웰베르레-8각형 뜰안으로 들어갔다. 이 뜰은 교황을 위하여 만들어진 8각형의 뜰로서 페르세우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의 목을 가져오는 조각(머리는 수십 마리의 뱀인데 여기서 파마머리가 나왔다는 설)으로서 아폴로신의 조각, 라오콘신상(기원전 1세기의 헬레니즘 작품)등이 조각되어있다. 
  • 뮤제의 여신의 방에는 카라칼라 황제의 욕실에서 미켈란젤로가 발견했다는 헬라클레스의 몸이 진열되어있는데 이 조각의 근육은 모든 근육조각의 표본이 된다고... 
  • 원형의 방에는 뽐베이에서 발견되었다는 헬라클레스의 청동상과 자주색의 통대리석으로 만들었다는 네로의 욕조가 진열되어있다. 벽면에는 지혜의 여신이 우뚝 
  • 그리스형 십자가의 방의 좌우에는 콘스탄티우스 대제의 석관이 있으며, 바닥에는 자연석 대리석을 사용하여 성녀 헬레나를 조각한 모자이크 그림이 있다. 수십종의 색깔대리석을 사용하여 그린 것이라 마치 그림이라고나 할까 ! 
  • 교황의 일대기와 예수의 일대기를 카페트로 짠 카페트의 전시가 시스티나 성당으로 향하는 복도에 계속 전시되어 있으며 천장의 돔에는 이태리의 도시별 지도를 그려놓은 긴 복도가 있다. 
  • 라파엘로가 여러제자와 함께 그린 그림이 있는 방. 이 그림의 특징은 원근법을 사용하였으며 그림자 처리, 기둥을 각도를 넣어 그려둠으로서 진짜 기둥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어렵다. 라파엘로가 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옆에서는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혼자서 그리고 있었는데 두사 람은 전혀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만난적이 없기에 그림의 기법이나 특징이 전혀 다르다고 한다. 
  •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섰다. 한쪽 벽면은 보수중이었다. 그 유명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고개를 치켜들고 쳐다보려니 온몸이 움추려든다. 미켈란젤로는 이그림을 혼자서 몇 년에 결쳐서 그렸다니... 
  •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했다. 이성베드로 성당은 20년 7개월에 걸쳐서 완공되었는데 이기간은 노아의 방주 기간과 일치한다. 이 성당은 미켈란젤로가 70세 때 총책임을 맡아서 건축하였다. 5개의 입구가 있는데 제일 오른쪽문은 성문으로서 1975년에 열렸었고 또 2000년에 열린다고 한다. 가운데 문은 성베드로 바울의 문이다. 성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메달려서 말라 죽었고 바울은 참수형을 당하였는데, 참수형 당했을 때 바울의 목이 3번 바닥에서 뛰었다고 한다. 서로 죽는 방법이 다른 것은 시민권의 여부와 관련되는데 시민권이 있는자 만이 참수형을 당할 권리가 있다고. 
  • 성베드로 성당의 천장은 금으로 도색되어 있으며 여러 개의 작은 돔은 조명과 음향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성당의 바닥길이는 211.5M이고 제일중앙의 돔 높이는 136.5M로서 미켈란젤로가 설계를 하였다고 한다. 벽면의 그림은 모두 대리석으로 모자이크한 것이다. 
  • 성당 안쪽의 오른쪽에는 삐에타(슬픔) 조각이 있다. 이는 1499년에 미켈란젤로가 24세에 조각한 것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새겨져있다. 조각에서 마리아가 예수를 앉고 있는데 이상한 것은 마리아가 너무 젊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와 마리아를 동시대인으로 조각했다는 설명이다. 
  • 중앙에는 고백의 제단이 있는데 이 제단은 교황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제 1대 교황 베드로에서부터 마지막 교황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마지막 교황까지 나오면 세상의 끝이라. 제단을 기준으로 제단의 안쪽은 바르크 양식이고 아래쪽은 르네상스의 건축양식이다. 제단 오른쪽으로 죽음의 문이 있는데 이는 시실리산 대리석을 사용햬으며 대리석이 엿자락처럼 휘어져있고 여인이 영국을 발로 밟고서있다. 
  • 성베드로 광장에 모여서 기념 촬영을 하고 떼베르강을 지나서 트레비 분수를 향해 출발. 
  • 시내는 온통 대리석 건물이다. 지나는 길에 대법원의 건물이 보이는데 앞면은 시꺼멓고 옆면은 하얗다. 가이드의 설명은 법원의 권위를 위하여 건물의 대리석을 청소를 하는데 시민들이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발로 인해 청소가 옆면만 하고 중단된 상태라고.... 
  • 트레비 분수에 도착했다. 많은 인파들로 붐볐다. 가이드가 불러 놓고 물어 보았다. 분수에다 동전을 몇 개 던지겠냐고... 짝수개를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
  • 나는 동전을 하나만 던져본다. 말의 입을 통하여 세차게 내품는 물 거리고 거친 말의 모습과 ....너무 활기와 생동감이 넘쳐흐르는 조각분수이다.   
  • 네로황제의 탑은 네가 황제가 그리스도인의 박해를 위하여 불을 질러놓고 탑위에서 몇날 몇일을 불타오르는 건물들을 쳐다보벼 흐뭇해 했다는 곳이다. 지금은 이곳에 무심코 거닐고있는 연인과 관광객 그리고 비둘기 몇마리....과연 그때의 불타오르는 시내를 둘러보노라면 어떤 마음이 ... 
  • 통일기념관의 웅장한 건물이 네로황제의 탑주위에 웅장히 서있다. 주위는 도로의 섬으로 이용되고 있다. 
  • 버스를 다시 타고 카타콤베로 이동하였다.
  • 카타콤베는 네로황제의 박해를 피해서 이곳 외곽에 땅을 파고 그리스도의 신앙을 지켰던 곳이리라. 입구는 하나인데 내려갈수록 입구가 많아지고 하나의 동굴입구는 또 2-3개로 갈라지고.... 2-3년 전에 일본 신혼부부가 이곳에 신혼여행을 왔다가 통제구역을 벗어나 구경을 하다, 입구를 찿지못하고 헤메다 결국은 사냥개의 수색작업에 의하여 발견되었는데 ......그래서 지금도 이곳은 일본인들의 통제 대상 관광지라고 ... 
  • 카타쿰베를 구경하고 나오는 입구정원에는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가 한 그루 심겨져 있길래 유심히 바라보다 다시 관광버스에 오른다. 
  • 버스를 타고 로마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커다란 벽돌 건물들이 보이고 중앙에는 아주 높은 첨탑모양도 보인다. 이곳이 카라칼라 황제의 목욕장 이라고 소개한다. 지금은 이곳에서 간혹 오페라공연과 같은 장엄한 공연이 자주 개최된다고 언젠가 TV에서 세계 3대 테너인 도밍고,,,의 공연을 본적이 있는데 그곳이 이곳 인듯하다. 
  • 콜롯세움은 정말 너무 장엄하고 웅장하다. 수많은 국민들을 동원하여 이 건축물을 짓고 또한 이곳에서 경기를 벌여놓고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국민들은 박수를 치며 유유히 구경을 하고 참...... 나오니 로마인 상인이 잡다한 물건들(그림엽서..)을 사라고 한국말로 흥정을 붙인다. "싸다싸 사세용 사 끼워도줘,,," 우리나라가 외국관광의 붐을 타고 하도 많은 관광객이 이태리를 찿아 우리나라의 기본 인사는 대부분 알고 있다고.... 
  • 대낮이라 햇살이 제법 따갑다. 시내 중심에 있는 대전차 경기장에 내려서 옛날 영화의 한 장면을 뜨올려 보았다. 축구경기장 같은 넓은 공간이다. 지금은 풀밭같이 흐름하지만 예전에는 대전차 경기를 벌이는 곳이라고..... 영화 벤허의 한 장면 처럼저쪽에서 수십대의 전차가 먼지를 만들면서 이쪽으로 향해 달려오는 듯하다. 이리야..... 
  • 진실의 입 보카 델라 베리타 광장에 있는 산타마리아인 코스메딘 교회 현관에는 그렇게 봐서 그런지 무시무시한 형상을 한 하수관 덮게가 있는데 이게 바로 본래의 용도보다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 때문에 더유명해진 '진실의 입'이다. 석판에 강의 신 얼굴을 조각한 이 덮개가 있는 산타마리아인 코스메딘 교회는6세기에 고대 로마의 시장지역에 세워졌는데 12세기에 우아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과 포티코가 더해져 금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내부에는 코스마일가의 훌륭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데 어쨌든 관광객들의 길을 멈추게 한 진실의 입은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콜롯세움이나 카라칼라욕장에서 걸어서 15분 거리로 우리와 같이 생긴 곳의 안쪽에 있으므로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진실의 입 안에 손을 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 11)HOTEL AIRPORT PALACE 투숙